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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회학 교수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이라는 저서에서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걷기는 세계를 사물들의 충일함 속에서 생각하도록 인도해주고 인간에게 그가 처한 조건의 비참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걷는 사람은 개인적 영성의 순례자이며 그는 걷기를 통해서 경건함과 겸허함, 인내를 배운다. 길을 걷는 것은 장소의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에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 형식이다”라고 했다. 편리하고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들은 이제 일부러 의도하지 않고는 거의 걷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책과 논문들이 걷는 맛, 걷기의 즐거움과 그 정신성에 관하여 얘기하고 있다.
최근 심리학 저널에 실린 한 논문(Oppezzo & Schwartz, 2014)에 따르면 걷기는 우리를 창의적으로 사고하게 한다. 이는 걷는 행동이 현재 있는 위치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떠남의 은유(metaphor)가 기존의 틀에 박힌 사고를 떠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이 논문은 여러 개의 실험을 통해 밝혔다. 이와 같이 몸의 움직임이 사람의 인지와 능력에 미치는 현상을 몸으로 생각하기, 즉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고 한다.
우리는 또한 일부러 고독해지기 위해서 즉 혼자이기 위해 걷는다. 아인슈타인은 조용한 삶에서 오는 고독(solitude)과 단순함은 창의적인 정신을 자극한다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혼자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스티븐슨은 산책은 반드시 혼자여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자유가 산책의 내제적인 속성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곳으로나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걷는 동안 우리는 전에 알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되는데, 몸의 움직임을 통해 감각을 깨우고, 깨워진 감각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해 나가게 된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관찰의 인문학: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에서는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했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장 전형적인 우리 동네”를 산책하기로 결정한다. 처음에는 혼자서, 그리고 나서는 동행인 한명씩과 함께 여러번 같은 길의 산책을 시도한다. 혼자 나섰을 때에는 온갖 것을 쳐다보며 어느 것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동네에서 중요한 것은 전부 눈에 담아 왔다고 자신하며 돌아온다. 그러나 이후 다른 열한 명(19달 된 아들, 지질학자, 타이포그라퍼, 일러스트레이터, 곤충박사,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사회학자, 의사, 시각장애인, 음향 엔지니어, 반려견)과의 산책을 마친 뒤에 저자는 자신이 거의 모든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가 보았던 것은 그가 이미 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들뿐이었다. 직업적인 이유로, 또는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 때문에 자신만의 분명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과의 산책은 그가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상을 보도록 해주었다.
이 봄날, 문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뚜벅이가 되어 목적지 없이 마냥 홍대 앞의 골목들을 걸으러 나서 보면 어떨까. 혼자여도 좋고 침묵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와 함께여도 좋으리라.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 있음으로 인한 행복한 감정에 빠져 보자. 이미 익숙해서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을 자신의 눈이 아닌 타인의, 이방인의 눈으로 “낯설게 보기”를 시도해 보자. 걷기에서 돌아오면 그동안 매어 있던 나만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 몇 보 전진한 새로운 사고와 신선한 감각으로 조금은 느긋하게 다시 돌아온 일상과 앞에 놓인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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